7월 4일
수술후 정확히 일주일만에 퇴원, 퇴원후 어머니가 보신을 해야한다고 극구 보신탕을 사준신다고 하셔서 보신탕집 찾아다니느라 좀 걸어다녔다. 그냥 삼계탕을 먹자고 했더니 그래도 보신을 해야한다며..(이럴때는 어머니가 옛날사람같다.), 걸어다니다 보니 시장안에도 들어가게되서 약 1시간이상은 걸은거같다. 물론 복대는 필수로 허리에 찬 상태로...
허리가 조금 뻐근하고, 오른쪽 발바닥 바깥쪽으로 저린느낌이 남아있지만 견딜만 할 정도였다.
그래도 좀 오래걸었는지 허리가 무겁고 몸이 지치는 정도가 빨리왔다.
7월 5일
일주일동안 휴가내고 입원하고나서 몇주는 더 쉬어야 한다는데 일단 출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사무실로 출근했다. 출퇴근 왕복 3시간거리에서 보통은 지하철 타면 빈자리 찾기 바뻤지만 허리가 아픈관계로 그냥 서서가는게 오히려 편했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했을때는 조금 무리가 됐지만 버스 빈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꽂꽂히 세우고 앉았다. 그래도 조금 묵직한 느낌..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보는분들마다 전부 '괜찮아요?' 라는 질문..
괜찮다고 하면 출근해도 되는거냐고 다시 질문.. 내 생각에도 지금 내 상태는 출근하면 안될거같은데.. 일단은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 처음 몇번 들을때는 걱정해주는게 고마웠는데 계속 들으니까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대답해야 할것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서 솔직히 그냥 안괜찮다고 말하고 다녔다. 안괜찮다고 했더니 의외의 대답에 당황했는지 후속 질문은 없었다.
반응은 보통 3종류,
1. 직접적인 상하관계가 없는 사무실 선후배님, 같은팀 동기들은 그냥 괜찮냐, 어떠냐 등의 상태를 묻는 질문.
2. 다른팀 동기들은 병가내고 쉬어야 되지 않냐며 병가내고 쉬라는 반응(아마도 같은팀동기들은 SM조직문화를 알기때문인지 병가내라는 말을 해준사람은 없음, 해완형만 해줌 ㅠㅠ)
3. 일할수 있겠냐, 일 하다가 아프면 조퇴해라, 견딜만 하겠냐 등의 유형. 출근했으니 멀쩡하다고 보시는 유형.
처음 의자에 앉을때부터 허리가 뻐근하며 무거웠다. 등받이에 기대는건 통증이 와서 안되겠고 의자 끝에 앉아서 허리를 꽂꽂히 세우는게 그나마 앉아있기에 편했다. 하지만 이것도 좀 허리에 무리가 가는지 중간중간 누울곳 찾아다니면서 몰래 숨어서 누워서 쉬기를 몇번 반복했다.
아무래도 당분간 출근하긴 무리인듯, 정말 병가라도 내야겠다.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다리를 절고 있는 날위해 안내하시는 분이 휠체어를 내어줬다. 휠체어에 앉으니 그나마 통증이 덜했지만 그래도 견디기 어려운 정도였다. 응급실에서는 간단히 몇가지를 물어보더니 재활의학과에 외래로 올려보내주겠다고 했다. 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재활의학과에서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으니 역시 허리디스크라고 하면서, MRI를 찍어보자고 했고, 나도 통증의 심각성을 느끼고 MRI를 찍겠다고 했다. 오늘 당장은 MRI예약이 다 차서 안되겠다고 해서 물리치료를 받고 MRI예약을 잡고 혈액검사를 위해 피뽑고 소변검사준비까지 마친후 나왔다. 물리치료를 받으니 조금은 견딜만 했으나 그래도 통증이 심해서 고대구로병원을 나오자마자 다시 그앞 OO정형외과로 들어갔다. 혈관주사를 맞고 또 물리치료를 받고 나왔다.
6.17 고대구로병원에서 MRI를 찍고 오후에는 출근했다.
6.21 오전에 OO정형외과에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혈액검사결과와 MRI 결과를 확인하러 고대구로병원에 다시 방문했다 재활의학과 의사가 내 MRI결과를 보는 표정이 심각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허리디스크 MRI사진을 많이 봐뒀었는데 내 MRI 결과가 가장 심각했다. 이건 그냥 척봐도 허리디스크였고, 그 정도가 심해서 통증이 심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보였다. 그렇다! 내 극심한 통증은 MRI결과로 볼때 정상적(?)이었던 것이다. 재활의학과 교수가 그자리에서 바로 소견서를 써주며 신경외과 박윤관교수한테 가보라고 했다. 신경외과가서 박윤관교수님하고의 진료 예약을 잡았다. 6월 23일 오전 11시15분.
6.23 오전 11시 15분, 고대구로병원 신경외과에 도착해서 대기했다. 대기하는 동안 기계로 혈압측정을 해서 간호사에게 전해줬다. 그리고 곧 박윤관 교수님을 만났다. 처음오셨냐는 말에 재활의학과에서 소견서 써주면서 여기로 가보라고해서 왔다고 말했다. 내 MRI사진을 보더니 바로 수술을 해야 할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
'운동으로 어떻게 해볼려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래! 내 상태는 이미 운동으로 어떻게 해볼단계는 지난거였다!! ㅠㅠ 궁금한거 몇가지를 물어봤다. 수술날짜는 언제냐 재발율은 어떻게 되냐, 얼마나 입원해야 하냐, 허리디스크중에 다른 부분은 괜찮은거냐 등등.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수술날짜는 6월 27,28일중 하루가 될거라고 했고 입원은 6월 26일에 입원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입원하려면 반드시 보호자와 같이 와야된다고 했다.
6.26 26일 오후 6시쯤 어머니와 함께 와서 입원절차를 밟았다. 그때까진 아직 수술을 언제하게 될지 몰랐고, 병실에 와서 대기하고 있자 투명한 수액의 링겔을 꽂아줬다. 엑스레이도 찍었다. 주치의에게 설명을 듣고 보호자의 수술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주치의가 밤11시쯤 온다고 해서 어머니가 그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밤12시 이후부터는 금식이래서 서둘러 빵하고 우유를 사다 먹었다.
6.27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는데 다행히 수술이 빨리 잡혔다. 오전11시에 수술하러 들어갔다. 전신마취를 하러 들어갔는데 왼팔에다가 흰색 주사를 놓는것을 보았다. 주사가 반쯤 들어가고 있을때 정신을 잃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라고 하는 소리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어서 산소를 마시고 있는거 같긴 했는데 느낌이 매퀘해서 산소마스크를 벗어버렸다.
수술은 오전11시에 들어가서 오후3시에 나왔다. 전신마취1시간, 수술1시간, 회복실2시간인듯 싶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병실로 돌아왔다. 돌아오고나서 보니 소변줄이 끼워져 있었고 등에도 작은 튜브를 통해 연결된 피주머니가 있었다. 정신도 없고, 몸도 꼼짝하기가 어려워서 그대로 잤다.
어차피 화요일 저녁때까지는 금식이었다. 그렇게 월요일 첫날은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내 자취집이 가까워서 낮에는 어머니가 병간호 하시고 밤에는 자취집에가서 자고 오시라고 했는데 이날은 수술한날 간호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하냐며 간호사가 어머니를 못가게 말렸다. 병간호하시는 어머니가 힘드신게 더 미안했다.
6.28 월요일에는 마취기운에 비몽사몽해서 못느끼던 허리의 피주머니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허리가 배겨오기 시작했다. 허리디스크로 아픈게 아니라 수술한곳에 붙인게 배겨서 허리가 부러질거 같았다. 뒤척여도 힘들고 앞으로 눕기엔 소변줄때문에 힘들고, 이래저래 가만히 누워있기도 힘들었다. 소변줄과 피주머니를 뗄려면 하루는 더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저녁에는 간단히 죽을 먹었다.
6.29 다행히 아침에 소변줄을 떼어냈다. 천국이 따로없었다. 그리고 복대를 차고 조금씩 일어서서 걷는 연습을 했다. 처음엔 어지러웠지만 금방 적응이 되어갔다. 수술한 부분이 묵직하고 아프지만 천천히 걸을만 했다. 목욕실에 눕는 의자가 있어서 거기 누워서 어머니가 머리를 감겨주었다. 애기가 된 마냥 세수까지 시켜줬다. 개운했다. 오후에는 피주머니도 떼어냈다.
6.30 어제 너무 걸어다녔는지 허리가 더 묵직했다. 간호사들이 조금만 걸을라고 할때 말들을걸 젊은거 하나 믿고 빨빨거리고 다녔더니 허리가 아펐다. 오전엔 자고 오후에서야 조금씩 걸어다녔다. 복대를 차고 있으면 혼자서도 밥먹는것도 화장실가는것도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허리를 굽힐수는 없어서, 세수까지는 가능해도 머리감는건 어려웠다. 머리가 감고 싶다.
7.1 머리가 너무 간지러워서 어떻게든 감아보려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그냥 허리는 안굽히고 한팔로 버티고 한팔로만 물뿌리고 감으면 될거같아서 감아봤는데 가능했다. 하루종일 병원에서 주는밥 먹고 자고, 가끔씩 놓아주는 항생제맞고, 링겔에서 떨어지는 식염수액 한방울 한방울을 쳐다보면서 보냈다. 산책도 하고 그랬는데 확실히 허리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느낌이다. 아침에 교수님회진때는 괜찮으면 내일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퇴원했다가 실밥뽑으러 다시 월요일에 와야된다고 했는데 퇴원안해도 된다고 그러길래 그냥 일단 안하기로 했다. 어차피 휴가 쓸건 다 썼고, 소독이나, 항생제, 식사문제등의 이유로 더 깔끔하게 치료하고 나가는게 나을거 같았다.
1부링크 http://www.handroid.net/177 2부링크 http://www.handroid.net/178 회사에서 제공하는 가정의 달 선물중에 5만원을 더 추가해서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고 취미생활겸 운동을 병행할 생각이었다. 6월에는 그렇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6월5일 자전거를 타고 왕복 30km 정도 거리의 한강여의도공원까지 갔다왔다. 6월11일도 마찬가지로 한강까지 나갔는데 이번엔 좀 더 멀리 방화대교까지 갔다왔다. 허리가 아프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때 허리에 무리가 간거같다. 6월13일. 출근했는데 오전내내 허리가 뻐근한게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오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지하철을 의자에 앉아서 퇴근하는데도 눕고 싶을 정도로 허리가 쑤셨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서 누웠는데 허리에 통증이 더 심해졌다. 누웠다가 일어나기가 힘들정도였다. 이래저래 힘겹게 저녁먹고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같았으면 새벽1시는 되야 잠이 들지만 아플때는 자는게 최고라는 생각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안아프겠지라는 생각.
6월14일. 잘때는 통증을 못느끼는건지 잠에서 깨자마자 허리가 부러질듯이 아펐다. 앞뒤양옆 어느 방향이든 조금만 움직여도 칼로 쑤셔대는 듯한 통증이 왔다. 출근하려고 몇번이나 일어나기를 시도했지만 시도할때마다 고통이 더 집중적이고 깊숙히 빠고 들어왔다. 임과장님과 양대리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바로 휴가를 냈다.
오전내내 발버둥을 치다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아프다고해서 꼬질꼬질한 모습은 안되기 때문에 화장실에 기어가서 눕다시피 한 자세로 머리도 감고 세수를 했다. 바지를 입는데 바지에 발을 넣기까지 15분이 걸렸다. 양말을 신는데도 30분이 걸렸다. 집밖을 나와서 절룩거려가며 벽을 짚으면서 집에서 5분거리인 고대구로병원으로 갔다. 고대구로병원에 도착했더니 초진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다. 3차의료기관이라 1,2차 병원의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일단 정형외과 접수창구로 갔다.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경외과로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재활의학과에 가면 소견서 없이도 될거라고 가보라고 해서 갔다. 하지만 예약이 꽉차 진료를 받으려면 4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도 하고 바닥에 드러눕고만 싶은 충동도 들었다. 몇분을 고민하다가 일단 병원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 OO정형외과가 보였다. 거기로 들어갔다. OO정형외과에 들어갔을때는 이미 허리가 2~3번은 끊어졌다 붙었다 한듯 고통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있을 오른쪽 다리 고통에 비하면 이정도는 참을만한 정도일뿐이었다.)
개인병원이라 급방 진료할수 있을거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한 10명정도의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역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를 만나러 들어갔다. 그동안의 간단한 치료이력을 말하고 침대에 누워서 내 허리상태를 진단했다. 엑스레이상에서는 오히려 디스크라고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표준적인 척추 엑스레이사진이었다. 내눈에도 그랬고, 의사도 엑스레이상으로는 깨끗할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진단시에 왼쪽다리는 완전히 멀쩡해서 누운상태로 들어도 통증하나 없었고, 오른쪽 다리는 들자마자 10도 각도에서 통증이 쏟아졌다. 혈관주사 처방과, 물리치료, 약처방이 내려졌다. 6월 15일. 좀 나아졌나 싶어서 출근을 했다. 하지만 나아진게 아니었다. 허리디스크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병원을 헤매고 다녔다고 말씀드리자 윗분들이 그럴때는 응급실을 통해서 가지 그랬냐며, 병원이용방법을 말해줬다. 6월 16일. 이제는 통증이 허리뿐만이 아니라 오른쪽 다리 전체적으로 저리고 쑤셨다. 오히려 허리는 덜해졌는데 오른쪽 다리가 터질것같이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무릎을 세우고 엎드려서 누워있으면 잠시 덜했다가 잠깐이라도 일어나면 다시 강하게 몰려왔다. 마치 무슨 스위치라도 달린것처럼 상체를 숙이면 덜했다가 세우면 고통이 강해졌다.
다시 회사에 휴가를 냈다. 화요일날의 요령을 되세겨 간신히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했다. 허리가 덜 아프니 옷입기는 수월했다. 하지만 서있고 30초가 지나자 다리가 터질듯히 아펐다. 통증이 가라앉을까 싶어 오전 10시까지 누워있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잠그고 나니 오른쪽 다리에 다시 통증이 심해졌다. 다시 열고 들어와서 다시 엎드려 누웠다. 다시 현관문으로 나가고, 들어오고, 나가고 들어오기를 5~6번을 반복했다. 도저히 못움직일정도라서 정말 심각하게 119를 부를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고대구로병원은 정말 5분거리밖에 안되는 집앞에서는 코앞거리라서 119를 부르는건 그 통증이 오는 와중에도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한번 이를 악물고 현관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와 집앞 길까지 내려왔다. 다리가 터질거 같아서 길바닥에 업드러눕다싶이 기대어 쉬면서 조금씩 큰 길가로 나왔다. 근데 거기까지가 한계였던건지, 정말 더이상은 칼로 쑤시고 불이 붙어 타버릴거 같은 오른쪽 다리를 어떻게 주체할수가 없었다. 119를 부르려고 전화기를 드는데 앞에 택시가 지나갔다. 30m 도 안되는 거리를 택시를 잡아타고 고대구로병원 응급실로 갔다.
2010년 12월 말 한의원에서의 물리치료는 그렇게 끝내고 일단 자연치유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말이 자연치유지 그냥 별다른 방법을 못찾고 있었다고나 할까. 물리치료는 꾸준히 받아봐야 효과도 없는것 같고 시간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러던중 2011년 2월쯤에도 다리를 편채로 허리를 굽혀서 발끝에 손을 대려 하면 여전히 허리에 찌릿한 통증을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신도림에 있는 한의원에 한번 찾아간걸로 기억하는데 그 한의원에서는 물리치료다운 물리치료도 없고 침 몇방놓고 침에 전기치료 하더니 진료비로 수만원을 내야했다. 그게 원래 정석적인 치료인지는 몰라도 제대로된 치료도 못받은거 같은데 진료비가 너무 비쌌다.
그래서 이때 다시 신도림 근처의 재활의학과를 찾아가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가까운 정형외과나, 한의원만 가도 물리치료는 할수 있었을텐데, 재활의학과라는 이름이 뭔가 나를 더 나은 치료로 이끌어 줄거란 생각에 먼거리를 찾아가서 재활의학과에 갔다.
여기서도 먼저 엑스레이를 찍고 지금까지의 치료경과를 간략히 설명했는데, 의사가 엑스레이를 보더니 역시 디스크일거 같다는 소견을 냈다. 그리고는 허리 특정부분에 약간 많은 양의 주사를 놓았는데 이 주사를 맞고 나면 살짝 통증이 줄었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플라시보효과(가짜약효과) 일수도 있지만 그당시의 느낌은 그랬다. 그리고 물리치료를 받고, 견인치료라는걸 하게 됐는데, 허리의 상하체부분을 따로 묶어서 하체를 조금씩 당겨주는 물리치료로 허리디스크에 압력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듯 했다.
그렇게 몇주에 걸쳐서 재활의학과를 2~3번정도 다녔는데, 역시 병원을 갔다왔을때 그때뿐이고 통증이 줄어들진 않았다. 먼거리를 다녀오는 시간과 치료비용에 비해서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활의학과도 더이상 다니지 않게 됐다.
그렇게 2011년 6월, 허리에 느껴지는 통증은 가라앉지도 더해지지도 않고 원래 처음부터 있던 고통인듯 그렇게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크게 아프지 않고 일상에도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치료와 방치를 반복해가고 있었고, 꾸준히 치료를 받을 시간적, 마음적 여유도 부족했다.
2011년 6월 1일 점심때에도 뻐끈한 허리를 이끌고 오금동 회사근처 재활의학과를 찾아갔는데 그곳 의사선생님은 엑스레이는 찍자고 안하고 내 얘기를 잘 들어주더니, 앞으로 20여회에 걸쳐서 꾸준히 물리치료를 하고, 비용은 한번에 3만원정도씩 총 몇십만원 이상은 나온다는 마스터플랜을 보여줬다. 허리가 아픈게 상체근육이 경직되서 그런거라며 근육을 풀어주는 치료를 하면서 본인이 가르쳐주는 체조를 병행하면 나아질거라고 했다. 일단 처음 방문했으니 그냥 돌아갈수도 없고 치료를 받아보기로 생각했다.
치료실로 들어갔는데 아픈 허리쪽이 아니라 간정도 위치의 배 부분에다가 주사바늘을 꽂아넣으려고 했다. 물론 그 부분의 근육에다가 주사하려는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간에다가 주사바늘을 꽂아 넣을려는 듯이 커다란 주사가 그 순간 너무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주사는 됐다고 하고 물리치료만 받고 나왔다. 의사가 가르쳐 준다던 체조는 결국 안가르쳐줬다. 그 주사를 맞지 않아서 의료비가 싸게 나왔기 때문에 그려려니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일반적인 치료시도는 급격한 통증의 시작과 함께 2011년 6월 1일부러 끝나게 되었다.
*일단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허리디스크 문제로 수술을 하게되어 여러 정보를 찾아보던중에 병원의 광고나 홍보가 섞이지 않는 정말 체험에 의한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런 글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물론 블로그중에서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되어던 분의 글도 있었지만. 객관적 사실만을 기록한 양질의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내가 직접 쓰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평소 건강에는 자신하는 편인데 결과적으로는 지금 허리디스크 수술을 앞두고 있다. 취직한이후로 컴퓨터작업을 많이하면서 내 자세가 안좋다는건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학생때부터나, 그 전부터의 잘못된 자세가 누적된 결과일수도 있겠다.
의자에 앉았을때 너무 낮으면 무릎아래 다리가 접혀지거나 쭉 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무릎아래부분을 바르게 세우고 있으려면 의자를 약간 높이는 자세가 편했다.
하지만 이렇게 의자를 높이면 책상높이가 팔꿈치보다 현저히 낮아지게 되는데 의자에 비하면 책상의 높이는 쉽게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낮은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있는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구부러지고 하중이 몰리게 된다.
이 자세가 문제가 아니었으면,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눕다싶이 앉아있는 자세가 허리에 무리가 간것일까. 어쨌든 중요한건 어떠한 잘못된 자세에 의해서 허리디스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나지만 작년에 거의 눕다싶이 한 자세에서 오른쪽 발목을 왼쪽 무릎위에 올려서 다리를 꼬고 일하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짧고 강렬한 통증이 허리에서 느껴졌다.
이때가 거의 허리통증의 시작이라고 생각되는데, 문제는 이때의 허리통증이 허리에서 지속된것이 아니라 오른쪽 엉덩이 위쪽이 계속 저리고 찌릿한데서 허리디스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엉덩이 근육쪽이 긴장했거나, 골반과 다리를 잇는 고관절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생각을 해서 사무실에서 가까운 한의원을 찾아가서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가계부기록에는 2010년 10월 16일에 최초 한의원치료를 받았는데, 이때는 명동에서 근무하던 때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오른쪽 엉덩이 위쪽의 근육긴장을 설명하고 그부위와 약간 허리부분에도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일주일정도의 물리치료에도 큰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이때 허리디스크를 의심하고 근처 백병원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내 허리 엑스레이사진을 보더니 디스크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어느부분이 조금 넓고 그 아래가 좁다면서 디스크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주었다. 그러나 어떠한 물리치료나 약처방없이 요통관련 스트레칭 책자를 하나 주면서 앞으로 그거보고 꾸준히 허리운동을 하라고만 말했다. 간단한 물리치료정도라도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허탈했고, 엑스레이로 26,450원, 의사진료 5분만으로 21,900 이라는 터무니없는 비용만 소비했다. 아주 미세한 허리디스크 증세일꺼라고 생각하고, 다니던 한의원에 계속 물리치료를 받으러 계속 다녔다.
하지만 한의원에서도 일주일정도의 물리치료에도 내가 그 효과를 못느끼겠다고 하자, 이때 어떤 주사를 맞게 되는데 이게 속칭 뼈주사인지 근육주사인지는 모르겠다. 엉덩이 저린쪽에 한방 그 위로 허리근방에 한방씩 2방정도 맞았던 걸로 기억한다. 맞고나면 조금 나아진 느낌이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 일단 물리치료를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잠을 잔다. 그리고 꿈을 꾸지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술취한 사람들의 '필름이 끊겼다' 라는 표현처럼 자는 순간의 기억이 없다.
어떻게 깨어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알람없이 깨어나는 날은 세상 잠을 모두 다 잔 사람처럼 스르륵 하고 눈이 떠진다. 시간은 몇시간이나 흘러있고 난 그 시간의 흐름을 의아해한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기억이 없다는것을 당황해한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은 어디로 갈까 고민한적이 있었다. 공중에 떠서 죽은 내 모습을 보며 슬퍼하는 3인칭이 될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사후세계란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다. 잠을 자는 매일매일이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 사람이 컴퓨터라면 켜져있을땐 프로그램도 실행시키고 음악도 재생하겠지만 전원을 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전원이 꺼져있는 상태는 기억해 낼수 없다. 누군가 켜주기 전까지 꿈꾸지 않는 잠처럼 죽어있을 뿐이다.
오늘도 잠들기전 문득 내가 지금 잠을 자는것인가 잠시 전원을 내리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금요일 출근을 위해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왔으나,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냥 자기엔 연휴동안 너무 잤기때문에 낮잠을 청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점심도 안먹은채
굶주린 배를 달래가며 카메라를 짊어지고 경복궁으로 나섰다.
추석연휴라서 그런걸까? 유명한 관광지라 원래 사람이 많은걸까? 티켓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줄은 금방금방 줄어들어지만 매표소앞의 무질서함이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 답지 않았다.
한복입은 사람들, 출사나온 사람들, 어른신 모시고 오신분들, 아이들과 함께 오신분들..
검푸른 기와
안내 브로셔를 들고다니지 않아서 무슨문이 무슨문인지 뭐하는곳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한자를 읽을수 있는것도 아니다...
그저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을 느낄뿐
편광필터를 사용해 봤더니 역시 하늘이 더 파랗게 나왔다.
사진설명은 안하고 잡소리만 늘어놓기.
유년시절을 기와집에서 살아서 그런지 이런 기와 건물에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데 저 알록달록한
색감과 하늘의 청명함이 유독 눈을 즐겁게 했다.
사진으로는 웅장해 보이지만 막상 그렇게 웅장하진 않았다. 중국의 자금성과 비교하시는 분들이 많았던거 같다.
해태조각?
광화문 거리의 건물들과 청명한 하늘
기와위에 있는 저 조각상이 뭘까? 왠지 사람이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있는듯했다.
구름위에 떠있는듯한 기와지붕.
마루바닥이라 방석은 역시 필수인듯..
조선시대에 실제로 저렇게 꽃을 놓아두었을까?
인류의 진화과정을 보는건가?
처마
들어가지 마시오
처마 밑 남산타워
담장무늬
처마의 저 문양이 약간 낯설었는데 혹시 저거 국화무늬인가?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우리나라 전통문양일까?
오늘의 주제는 고궁과 하늘이다.
고궁속 정원
궁안을 안내하는 가이드, 천천히 또박또박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저런 첨단 보안장치가 있을줄이야.. 역시 조선!
봉황
쉬고있는 잠자리
경복궁을 지나가니 바로 청와대 앞이 나왔다. 철통보안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 매복하고 있는건가?
외국 사신이 오면 불러다 술먹였다는 경회루. 술맛날거같다.
푸른하늘은 편광필터의 힘!
얼마전 복원공사를 끝마쳤다는 광화문의 뒷모습..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부를까 하다 말았다.
사실은 나도 저렇게 커플로 와서 사진찍고 있어야하는데 혼자 출사라니 이게 왠 궁상이냐 라고 신세
한탄을 했지만 점점 혼자다니는 출사가 익숙해지고 있다.
카드대금은 대폭 늘고, 저축은 절반 이하로.. 시도때도 없는 지름신 막지못해, 작년대비 지출금액 100% 이상 증가. - HTH Daily, handroid 기자-
매달 수입의 70%를 저축하겠다던 한모씨의 가계부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2008년 사회에 첫발을 내뒨 후 건전한 소비문화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던 한모씨.
매달 수입의 70%를 목표로 적금,펀드,청약 등의 다양한 재테크 방법을 통해 목표치보다 부족하지만 평균 60% 이상의 저축률을 달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0년 한모씨의 가계부에는부실을 나타내는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 한모씨의 비밀장부 내역 최초 입수 -
2008년 부터 2009년 말까지 그의 가계부는 비교적 건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거주지이전에 맞춘 적금만기와, 묻지마 주식투자, 무계획성 지출목록등은 한모씨의 재무상황을 악화시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제2금융권에 투자되었던 만기적금을 대체할 새로운 재테크 수단을 찾지 못해 유동성 현금이 통장에 넘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만기된 인덱스 펀드가 합리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투자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 없게 주식 물타기 수단에 동원된 점은 크나큰 악재로 작용하였습니다.
또한 미래성장동력으로 추진되어진 디지털피아노, DSLR 카메라등의 중형 지출건들의 예산편성이 여유기간없이 조기 집행됨으로써 재정건정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몇백단위 이상의 대형 지출건에 대한 예산심사가 적합한 심의없이 통과되어 한모씨의 재정상태는 당분간 악화일로로 빠져들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에 대해 한모씨는 '모든 지출건은 합리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고, 통제가능한 범위안에서 발생하고 있다.' 라고 해명했으나, HTH Daily가 입수한 한모씨의 비밀장부를 살펴 본 결과 장부상에 분식회계가 발생한 점이 포착되고 있어, 한모씨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조만식(曺晩植, 1883년[1] 2월 1일 ~ 1950년 10월 1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시민사회단체인·정치인이다. 22세에 개신교에 귀의한 이후 상업과 종교활동에 종사하다가 1919년 3.1만세운동과 중국 출국실패 등으로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오산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하에 교육활동과 물산장려운동· 국내민간 자본으로 대학설립 추진 운동인 민립대학 기성회 운동을 주도하였다.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고, 한국최초의 기독교 정당인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초대 총재를 지냈으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관하다가 1946년 평양 고려호텔에 감금된 뒤 한국 전쟁 중 살해되었다.
해방 정국에서 북조선지역에서 지도적인 기독교 민족주의자였으며 평안도 개신교도들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기도 했다.[2] 국산 물산장려운동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조선의 간디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아호는 고당(古堂), 본관은 창녕, 종교는 기독교이다.
이번년도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고병운의 뒷모습.
심금을 울리는 글귀 하나를 보고 있지만 역시 예비역 해병대 답게
눈가에 맺히는 촉촉한(?) 눈물따윈 없었다. 그러나 그의 뒷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마침 상영되고 있는 북한관련 영상물, 북괴정권의 악행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처음에는 진지하게 보다가 점점 보면서 군대에서의 정신교육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어서
이미 아는 내용이라고 단정짓고 상영관을 나왔다.
통일전망대엔 외국인 광관객이 많았는데, 중국인, 일본인이 대다수였고 한국사람은 나이 많은
노인분들이 계셨던거 같다. 분단이라는 상황이 관광상품이 된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 모래판을 보니 의외로 북한이 눈앞에 있다는게 실감이 낫다. 거리가 3.2 킬로밖에 안난다니..
비록 안개때문에 직접 볼순 없었지만 안개 너머가 북한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통일전망대의 여러가지 소장자료중에서 위 자료가 가장 눈에 띄었다.
정자체로 반듯이 사인한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글씨와 상반된 김정일의 날림글씨가 비교된다.
통일전망대에서 나오면서 북학의 벌꿀소주와, 대동강 맥주를 한병씩 시음용으로 샀다.
생각보다 북한의 민속주가 많았는데 한글로 쓴 상표명이외에도 영어로도 상표명이 쓰여져 있다는게
사뭇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기서부터는 프로방스다.
프로방스에 도착했다.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씩은 다 찍어본다는 꽃 접사사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사진발좀 받아주고 있는 꽃
프로방스에는 익숙한 상표의 상점도 있고 잘 모르는 곳도 있었는데, 건물자체가 알록달록하게
이쁘게 꾸며져 있어서, 왠지 들어가서 사야할것 같은 느낌보다 전시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잠시 몇장 감상..
조그마한 연못과 다리.
걸려있는 한쌍의 컵? 머그잔?
향기로운 물건?
새끼양? 양새끼?
내 삶처럼 꼬여있다.
생화같은 조화? 조화같은 생화?
비누방울 조형물.
금붕어 한마리 키우면 어울릴듯한 어항?
그냥 사진연습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한폭의 꽃?
고병운을 찍으려다 우연히 정 가운데에 정확히 찍힌 이름모를 여성
말머리
양철 지붕 처마
프로방스에 맥주 3+1 하는 식당이 있어서 날씨도 좋구 목도 말라 맥주마시러 갔다가 안주삼아 주문한 피자. 맛은 기가 막혔다.
지금부터는 헤이리 마을
사전조사 없이 간 헤이리마을은 현대적인 건물로 이루어진 문화,예술 복합단지 같은 곳이었다.
단순히 잘 지어진 건물을 구경하는 곳인줄로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안에서 다양한 문화행사와
공연, 이벤트, 전시회등이 대부분 유로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가격이 저렴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주위 곳곳에서 다양한 작품과, 느낌있는 전시품들이 이곳이
왜 파주에서 이름난 관광지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옛날느낌, 녹슬다, 헤지다, 낡다, 차갑다, 거칠다, 흐릿하다, 아른거리다, 익숙하다.
날도 더운데 이제 헬멧은 벗어도 될거같은데..
어울리지 않는곳에서의 익숙함, 생각지도 못한곳에서 만난 이질적인 물건들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바다가 아닌곳에 놓여진 바닷가 물건들은 내게 작지만 생소한 정서적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사진연습용 인형
철지난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진연습
여기서부터는 영어마을
생각보다 영어쓸일도 거의 없었고 외국인을 볼일도 없었다. 건물의 규모와 이국적 느낌이 전부인곳.
출입구를 대신해 꾸며놓은 입국장에서 들은 외국인의
where are you from? 과 그에 답변한 친구의 '뭐라고 해야되지? 안산?'
이 대화가 영어마을에서 체험한 영어의 전부였다.
그나마 이국적인 도시느낌이 입장료를 조금이라도 아깝지 않게 만들어주는 이유다.
사진좀 찍는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다 찍어본다는 원근감 사진.
정말 원근감 사진일까? 실제 물을 마시고 있는건 아닐까? 후후
(삭제요청으로 인물삭제함 ㅎㅎㅎ)
맨위의 영어마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영어마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정신없이 돌아다닌 여정이지만 충분히 즐길수 있었고, 여유를 느낄수 있었다.
비록 느낌있는 사진 한장이 없어서 아쉽지만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